2013. 10. 20. 생명의 말씀

종교 이야기 2013. 10. 20. 18:22
[생명의 말씀]

 

 

친구야, 함께 놀자!

  어린시절의 추억들 가운데에는 간혹 잘 보존된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되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 복사단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땐 정말 성당 다니는 것이 신이 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때만큼 ‘선교의 열정’(?)이 강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동네 친구들을 종종 성당에 데리고 가곤 했는데, 이럴 때면 시합 때의 김연아 선수처럼, 성당 마당에 있는 성모상 앞에서 보란 듯이 성호를 긋고 오른 무릎을 꿇는 등 과장된 행동도 하곤 하였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성당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 곳인지를 알리고 싶었고, 또 성당에서 함께 놀고 싶었던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선포 50주년을 맞이하여 ‘신앙의 해’를 선포하면서, 공의회의 근본취지를 기억하며 신앙의 참된 의미를 재확인하고 그 기쁨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자고 권고하였습니다.

  오늘은 ‘신앙의 해’의 막바지에 맞이하는 전교주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같은 취지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복지기관이나 NGO(비정부민간단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얻게 되는 구원의 기쁨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이들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교란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 모두가 신앙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내면의 기쁨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행위입니다.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가톨릭교회교리서」 850항)라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에 앞서 당신 복음선포의 출발지인 갈릴래아로 제자들을 부르시어 당부의 말씀을 남기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은 왠지 딱딱한 교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신비이기 때문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 되어 사랑의 가족공동체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라는 당부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것’은 단순히 삶의 지혜나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모시고 하나의 커다란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 가족 안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자매들은 더욱 특별한 배려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친구야, 함께 놀자!’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김영국 요셉 신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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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이삭 - 김태희 02

종교 이야기 2012. 6. 29. 21:28

[말씀의 이삭]

 

 

하느님의 훈육 방법

  삶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절실히 찾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쁜 일이 생겨 한없이 감사를 드릴 때, 그리고 힘든 일이 생겨 마음이 너무나 괴로울 때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느님 앞에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게 될 때는, 역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뭔가 큰일이 생겼을 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살다 보면,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하며,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지금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하고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해를 입힌 것 같은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서 과연 아무 이유 없이 오로지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이신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 마냥 피하고만 싶은 일들도 분명 시간이 흐르면, 그로 인해 내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게끔 하신 하느님의 지혜로운 훈육 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예상치 못했던 사건 하나하나가, 사실은 모두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 누구에게도 원망이나 불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숨은 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면서 그분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우리가 늘 하느님을 잊지 않고 사는 것, 그것 하나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상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하느님께 뻔뻔하게 매달리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잘것없고 어리석은 목소리에도, 하느님은 언제나 늘 계시던 그 자리에서 귀 기울여 들어주십니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도, 혹은 내게 왜 이런 시련과 고난을 주시나 하고 영문을 모를 때도, 하느님께 답을 묻고 의지하면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은 더 이상 나 혼자 지고 가야 하는 짐이 아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연기’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은 정말 하느님이 주관하시지 않았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을 일입니다. 내가 많은 사람 앞에 나서서 뭔가를 표현하는, 연기를 하게 될 줄은 정말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말이 없고 사교성이 그닥 좋지 않았던 나는, 몇몇 친한 사람들 하고만 잘 지내며 내 할 일만 성실히 하면서 살 뿐이었습니다. 그런 내게, 하느님은 연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살아보게 하고, 그들을 마음으로 온전히 이해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연기를 통해, 나를 설레게 하고 희열을 느끼게도 하며 풍성한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또, 무엇보다도 정말 많은 팬들의 조건 없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을 내 앞에 보여주시면서 개인주의적인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되돌아보게 하십니다. 결국, 하느님이 나를 연기자로 이끄신 것은 아마도 그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김태희 베르다┃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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