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종교 이야기 2014. 1. 12. 16:21

[생명의 말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을 보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외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조용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시끄러운 소음 속에 세상을 살아갑니까? 저는 명동에 살고 있습니다. 명동거리는 가게마다 물건을 팔기 위해 큰소리로 노래를 틀거나 여러 가지 선전을 해대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화조차 하기 힘듭니다. 부디 살면서 작은 소리로도 의사전달이 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잃어버렸던 자연의 소리들을 다시 들으며 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빗소리, 바람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 풀벌레 소리, 눈이 쌓이는 소리, 꽃이 피는 소리까지…. 인간의 고함이 멈추고, 이런 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 때 하느님의 소리도 함께 들릴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갈대가 부러졌어도 꺾어버리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 세상은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이겨야 살아남는 세상, 경쟁에서 뒤지면 누구라도 노숙자가 될 수 있고 잊혀져야 하는 세상, 장애를 갖고 살아가기에 너무나 힘든 세상, 때론 가까운 사람마저도 적이 되어버리고, 빈민들에게는 아예 관심을 꺼버리고 살아가야 하는 냉혹한 세상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던 삶의 여유는 어디 갔습니까?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고 사랑의 대상은 결국 다른 사람들인데, 혼자 살아남는다면 사랑할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떤 분의 시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닮아야 할 하느님의 측은지심이겠지요.


  세 번째,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지치고 기가 꺾여 용기를 잃는 일 없이 끝까지 성실하게 공정을 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또한 절망과 좌절의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종교와 사상, 그리고 빈부의 격차 때문에 생기는 무서운 테러와 전쟁,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을 허락하지 않는 선진강대국들의 견제구조, 그로 인해 생기는 국가 차원의 우울증과 정신질환, 그리고 수많은 자살과 범죄들. 희망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원하십니다. 기죽지 말고, 자살하지 말고 끝까지 성실하게 바른길을 가라고…. 개개인의 성실과 정직이 거대하고도 불의한 세상의 폭력을 끝내는 이길수 있는 길이라고 하느님은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한 분 계셨지요. 바로 우리의 길이 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그 길이 이제는 우리가 걸어야 할 인생길입니다. 겸손하고 조용하지만, 연민과 정이 가득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끝까지 걸어가는 그 인생길, 그 길이야말로 지금의 시끄럽고 혼란스러우며 무정하고도 절망스럽기까지 한 이 세상을 이기는 바로 그 길입니다.


고찬근 신부

명동대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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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4 생명의 말씀

종교 이야기 2013. 12. 15. 18:22

[생명의 말씀]


 


 


크리스마스트리를 더욱 화사하게!


  올해도 어김없이 예수님의 성탄 대축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서울광장 같은 공공장소에도 웅장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고, ‘성탄 특수’를 노리는 상점들의 화려한 장식과 음악 소리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합니다. 그런데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이사 35,5-6)라는 구세주의 오심을 알리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이 땅 위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복음에서는 그토록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세례자 요한이 약간 동요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하고 묻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사람들이 메시아에 대해 매우 큰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로마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강성한 왕국이 세워지고, 그 왕국에서는 모든 불의가 사라지고 풍요로운 삶이 보장되며, 이스라엘 백성은 주위의 모든 민족으로부터 부러움을 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대에 비하면 예수님의 행적들이 미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보게 해주시고(마태 9), 다리저는 이들은 제대로 걸을 수 있게 해 주시며(마태 15, 요한 5),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루카 17) 귀먹은 이들을 듣게 해 주시며(마르 7)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해 주셨지만(마태 8), 이런 혜택을 누린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의혹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마태 11,5)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복음에는 예수님의 응답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반응이 없지만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미루어 요한은 주님에 대한 의혹을 떨쳐버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기고 묵상해야 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다.”(마태 11,11)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하늘나라의 작은 표지들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루아침에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실질적인 도움을 통해 하늘 나라의 작은 표지들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 작은 표지들이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되어 올해 성탄에 세우게 될 크리스마스트리를 더욱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영국 요셉 신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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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0. 생명의 말씀

종교 이야기 2013. 10. 20. 18:22
[생명의 말씀]

 

 

친구야, 함께 놀자!

  어린시절의 추억들 가운데에는 간혹 잘 보존된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되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 복사단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땐 정말 성당 다니는 것이 신이 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때만큼 ‘선교의 열정’(?)이 강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동네 친구들을 종종 성당에 데리고 가곤 했는데, 이럴 때면 시합 때의 김연아 선수처럼, 성당 마당에 있는 성모상 앞에서 보란 듯이 성호를 긋고 오른 무릎을 꿇는 등 과장된 행동도 하곤 하였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성당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 곳인지를 알리고 싶었고, 또 성당에서 함께 놀고 싶었던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선포 50주년을 맞이하여 ‘신앙의 해’를 선포하면서, 공의회의 근본취지를 기억하며 신앙의 참된 의미를 재확인하고 그 기쁨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자고 권고하였습니다.

  오늘은 ‘신앙의 해’의 막바지에 맞이하는 전교주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같은 취지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복지기관이나 NGO(비정부민간단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얻게 되는 구원의 기쁨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이들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교란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 모두가 신앙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내면의 기쁨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행위입니다.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가톨릭교회교리서」 850항)라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에 앞서 당신 복음선포의 출발지인 갈릴래아로 제자들을 부르시어 당부의 말씀을 남기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은 왠지 딱딱한 교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신비이기 때문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 되어 사랑의 가족공동체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라는 당부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것’은 단순히 삶의 지혜나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모시고 하나의 커다란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 가족 안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자매들은 더욱 특별한 배려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친구야, 함께 놀자!’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김영국 요셉 신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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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소변 본 목사, 성당서는 대변까지…

종교 이야기 2012. 9. 9. 14:03

절에서 소변 본 목사, 성당서는 대변까지… 

 

지난달 20일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불교 탱화와 벽화를 훼손하고 방뇨를 해 구속된 목사 성모(43)씨가 지난달 울산의 한 성당에서 비슷한 행각을 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7일 대구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성씨는 지난달 17일과 23일 울산의 한 성당에서 성모마리아 상을 쓰러뜨린 뒤 소변과 대변을 보고 자신의 배설물을 마리아상에 칠했다.

경찰은 울산경찰서가 지난달 20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실을 확인 후 동부경찰서에 공조수사를 의뢰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한편 성씨는 지난달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불교 탱화와 벽화를 훼손하고 방뇨를 해 재물손괴와 현주건조물침입 혐의로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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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뉴스에 대응할만한 개신교의 자세

1. 성모(43) 목사는 이단 종파 목사이다.

2. 목사가 아닌것으로 밝혀졌다.

3. 일부의 일을 우리 전체의 일인냥 폄허하지 마라.

4. 모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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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보인다. 문제는 공공연히 이런식으로 카톨릭을 (마리아교 라고) 폄허하는 그들의 행동이 맞는 것인지 의심부터 든다. 다른 종교인 불교나 이슬람교를 배격하는 건 이해가 될 수도 있지만, 같은 뿌리이고, 개신교 존재의 근원을 가진 카톨릭까지 배격하려 하는 이러한 행위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미사에 참여해 본 횟수도 몇번 안되고, 교리에 대해서도 카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서나 들어 본 채로 일방적으로 폄허하고 있다. 

이단들은 자신들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 하지만, 그들이 이단인 이유는 그들이 뭔가 잘못된 것을 진리라고 믿고 있어서 이다. 그러나 카톨릭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단 한번도 자신들이 마리아를 숭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개신교에서 카톨릭을 마리아교라고 부르는 근거는 그들이 지어낸 말도 안되는 억지가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세상의 역사는 강자에 의해 변하더라도 그 진실은 항상 남아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얼마나 개신교의 세력이 쎈지 알 순 없으나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종교는 여전히 카톨릭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잊어버린 채 아직도 추태를 저지르고 있다. 독도가 우리땅 이듯이...

 

-신부가 죄를 저지를 경우 카톨릭은 강한 권력으로 그들을 보호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또한 죄가 들어난 경우 주교 심지어 위중한 경우 교황도 사과를 했다. 그러나 어떤 장로교 목사의 추태는 그가 나가지 않는 다른 교회들과는 무관한 상황일 뿐이다.(어차피 주교와 교황의 위치가 카톨릭에서 얼마나 큰지는 알지 못하므로 글을 이해 할 수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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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와 복음

종교 이야기 2012. 7. 8. 09:21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목요일) 이동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말하는 흔히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시는 분들의 근거..? 그렇지만 악법도 아닌 법을 어겨가며, 종교의 자유를 무시한채 강압적인 방식으로 엉터리 교회를 전파하여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주님의 뜻을 위배하는 것이 아닐지...

<너희는>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8-22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18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 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 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 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 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 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 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 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 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 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 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 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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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이삭- 김태희 01

종교 이야기 2012. 6. 27. 09:28
Seouljubo

[말씀의 이삭]

 

 

나는 늘 너와 함께 있다.

  처음 성당에 다니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입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 남동생과 함께 교리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아, 그렇게 첫영성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더 어릴 때에는 조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에 가끔 절에 따라다니기도 했는데, 어린 내 눈에는 왠지 모르게 성당 다니는 다른 친구들이 예쁜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 부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성당의 사목회장을 맡고 계시던 담임 선생님께서 어느샌가 엄마를 인도하셨고, 그렇게 해서 나머지 가족들도 차례로 자연스럽게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해서 곧바로 하느님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성당에 열심히 다녀야 왠지 복을 받을 것 같고, 수험생이 되어 불안할 때 어딘가 기댈 곳이 있다는 게 좋았을 따름이었습니다. 내가 자란 울산은 당시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였기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고등학교 입시에 대한 경쟁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단순한 성격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매주 주일 미사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게 정확히 중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걸어서 학교 가는 길이었는데 유난히 아침 햇살이 따듯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땅도 보고 하늘도 보며 걷다 불현듯 뭔가 알 수 없는 신비스런 기운에 휩싸이면서 가슴이 벅차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늘 너와 함께 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하지만 눈이 부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저 태양처럼, 그렇게 하느님이 나도 모르게 늘 나를 지켜봐 주시고 따듯하게 안아주시고 계셨구나 하는 황홀한 깨달음이 한순간에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뒤로 나는 대부분의 날을 행복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껏 만끽하며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냥 그날의 기분 탓에 겪은 단순한 감정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다는 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증명해 보여줄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난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놀라운 체험들을 꽤 많이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사사롭고 막무가내인 수많은 기도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응답해주시며 당신의 존재를 늘 내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아 하느님 말씀을 모른 척하며 살지 않는 이상, 하느님은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친절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많은 말씀 가운데, 유독 여러번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고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만큼, 내가 이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그날은 과연 언제 올 수 있을지…. 오늘도 난 하느님 앞에서 한없이 모자라고 부끄러운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날 사랑하실 거야 … 영원히….’ 라고.

김태희 베르다┃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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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종교 이야기 2012. 3. 30. 20:20

예수님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그 구실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 일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증거를 찾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죄목에 맞는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하였습니 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는 메시아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패하자 그들은 다른 방법을 찾습니 다. 이제 그들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두고 따집니다. 종교적 전통과 율법에 사로잡힌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편에 있지 않으면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도 그러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릇된 신념이나 편견과 고집으로 꽉 찬 사람들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전쟁까지도 일으킵니다. 폭력과 살상을 해서라도 자신들의 신 념과 종교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내 신념이나 주관이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올바로 점검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1-42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 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 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 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 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 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 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 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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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목사의 "가톨릭과 맞장"

종교 이야기 2012. 3. 15. 16:02

서경석 목사의 "가톨릭과 맞장"


벌써 14일 전인 지난 3월 1일에 개신교 목사 서경석씨는 "가톨릭과 맞장" 이라는 말이 들어간 발언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기독교라고 불리우는 개신교목사를 앞세워 정치적인 발언을 심하게 하고 있다.

석 의 한 위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이 있다. 가톨릭에서도 사회 교리라는  것으로 신도들의 적극적인 사회, 정치 참여를 인정하고 그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정치적 발언은 개인의 입장에서 가능하지만, 그것이 특정 종교의 전체인것 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개신교의 목사님들, 특히 유명 목사님들이 그러한 발언을 하고 있고, 가톨릭에서는 정의구현 사제단의 촛불집회 참여가 마치 가톨릭 전체의 분위기와 주장인냥 신문에서는 떠들고 있다.

 그리고 내가 서경석 목사님의 발언에서 화가 난 것은 종교적인 측면이 강하다.


"기독교의 가장 보편적인 교회가톨릭을 전혀 다른 종교인냥 이야기한다."



가톨릭의 의미를 살펴보면,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혹은 가톨릭판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영어로 ' the holy Catholic Church'에서 시작된다. 즉, 가톨릭은 사도신경이 인정한 거룩한 교회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다시한번 개신교도로 부터 반박을 받는다. 그것은 바로 변질된 종교를 개혁하여, 진정한 교회로 변화된 것이 바로 개신교이며, 그것만이 진정한 기독교라는 것이다. 우선 마리아교라는 오해 아닌 오해는 반박하기 전에 그 부분 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같다. 앞으로 몇번의 걸친 포스팅을 통해 흔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톨릭교에 대한 오해와 이야기들을 이야기 해 볼까 한다.



공회 : 로마 제국 시대에, 예루살렘과 각 지방에 있던 유대 인의 의회. 주로 국민의 종교 생활을 감독하며 민사(民事) 문제도 맡아보았다.


정치적 발언을 하기 위한 블로그가 아닌 이상, 정치적인 측면은 제외했다. 가톨릭 주교회에서 제주도 기지건설을 반대하기로 공식입장을 밝혔다면, 가톨릭 신자인 나도 (그 의견을 반대할 수는 있겠지만) 따라가야 하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종교이다. 정의사제 구현단은 주교회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은 이단도 아니다. 그부분은 글을 써가면서 이해 해 보도록 하겠다.


게그맨 서경석씨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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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뉴스에 따르면 서경석 목사기독교지도자협의회와 나라와교회를바로세우기위한 국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지난 1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기독교 범교단 단체 및 애국 단체 연합 3·1절 기념대회'에서 "여태까지 가톨릭이 반대해 왔는데, 이번에 개신교인들이 모두 나서서 결연 하게 가톨릭과 맞장을 뜨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좌파들이 제주도가 평화의 섬인데 거기 왜 해군기지가 있어야 하냐고 하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는데, 좌파들이 이걸 전부 뒤집고 백지화하려고 하고 있다"면서 "제주도에서는 지금 우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좌파의 목소리만 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 목사는 특히 "오는 8일 개신교인들제주도에 모인다"며 "10만원을 보조해 줄 테니 자기 돈 4만원만 내고 제주도에 같이 가자"고 개신교인들의 제주도 방문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육지에서 제주도로 간다는 개신교인이 250명"이라며 "현지에서도 1500명이 모이겠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LIM, Yang Kyu(임양규)
Audio & Interactive Media Lab
Graduate School of Culture Technology
KAIS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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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0386@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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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홍콩 통해 교황청과 관계 개선 희망”

종교 이야기 2012. 3. 14. 14:10

中 “홍콩 통해 교황청과 관계 개선 희망”


독자적인 주교 서품을 두고 바티칸과 갈등을 빚어온 중국이 홍콩의 추기경을 통해 바티칸에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중국의 관제 가톨릭 단체인 중국천주교애국회의 류바이녠 부주석은 어제 홍콩 케이블 TV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월 교황청이 새로 서임한 홍콩의 존 통 혼 추기경이 중국과 교황청의 관계를 개선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류 부주석은 또 통 추기경이 중국과 바티칸의 화해를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며, 통 추기경이 중국-바티칸 관계를 개선하는데 긍정적인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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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중국의 가톨릭 사제들이 교황청과 중국 정부 가운데 한 곳을 지지해야 하는 ‘양심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내 관제 가톨릭단체인 ‘중국천주교애국회(中國天主敎愛國會. 이하 애국회)’가 교황청의 반대에도 조만간 ‘제8차 가톨릭 전국대표자대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사제들의 참여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


애국회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류바이녠(劉柏年) 부주석은 “더는 대회를 늦출 수 없다”면서 “조만간 대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국회는 이번 대회에서 지난 푸톄산(傅鐵山. 미카엘) 애국회 주석 겸 천주교 베이징교구 주교의 사망 이후 공석중인 주석을 선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회가 개최되면 류바이녠이 주석에 선출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번 대회는 지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교황청은 애국회가 ‘전국대회’를 열어 독단적으로 중국 가톨릭계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은 가톨릭 교리에 위반하는 것이라면서 주교나 신부들의 참여를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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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종교 탄압은 재미있는 모습을 띄우고 있습니다. 애국회를 세워 종교를 정부에서 조종하는 방식인데, 바티칸 교황청의 지시를 받고 있는 전체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것이 탄압으로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주교 및 사제를 바티칸의 동의 없이 정부에서 뽑는 것은 이미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중국에는 바티칸에 인정받은 사제와 중국 정부쪽 사제가 있다고 하는데, 그들은 당연히 정부로 부터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던 한 중국인 사제는 

"나는 귀국 즉시 체포 당한다. 하지만, 조국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분의 사제 서품은 2시에 이루어 졌는데, 이는 우리 대한민국 사제 서품 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 되었지만, 실제로는 새벽 2시 였다고 합니다. 장소는 근처 야산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장충 체육관 같은 큰 장소에서 오픈되어서 미사로 거행됩니다.

중국 교회의 발전을 위한 그리고 지하 교회와 애국회의 일치를 위한 노력과 도움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LIM, Yang Kyu(임양규)
Audio & Interactive Media Lab
Graduate School of Culture Technology
KAIST, Korea


lim03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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