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 김태희 01

종교 이야기 2012. 6. 27. 09:28
Seouljubo

[말씀의 이삭]

 

 

나는 늘 너와 함께 있다.

  처음 성당에 다니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입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 남동생과 함께 교리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아, 그렇게 첫영성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더 어릴 때에는 조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에 가끔 절에 따라다니기도 했는데, 어린 내 눈에는 왠지 모르게 성당 다니는 다른 친구들이 예쁜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 부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성당의 사목회장을 맡고 계시던 담임 선생님께서 어느샌가 엄마를 인도하셨고, 그렇게 해서 나머지 가족들도 차례로 자연스럽게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해서 곧바로 하느님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성당에 열심히 다녀야 왠지 복을 받을 것 같고, 수험생이 되어 불안할 때 어딘가 기댈 곳이 있다는 게 좋았을 따름이었습니다. 내가 자란 울산은 당시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였기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고등학교 입시에 대한 경쟁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단순한 성격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매주 주일 미사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게 정확히 중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걸어서 학교 가는 길이었는데 유난히 아침 햇살이 따듯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땅도 보고 하늘도 보며 걷다 불현듯 뭔가 알 수 없는 신비스런 기운에 휩싸이면서 가슴이 벅차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늘 너와 함께 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하지만 눈이 부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저 태양처럼, 그렇게 하느님이 나도 모르게 늘 나를 지켜봐 주시고 따듯하게 안아주시고 계셨구나 하는 황홀한 깨달음이 한순간에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뒤로 나는 대부분의 날을 행복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껏 만끽하며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냥 그날의 기분 탓에 겪은 단순한 감정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다는 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증명해 보여줄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난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놀라운 체험들을 꽤 많이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사사롭고 막무가내인 수많은 기도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응답해주시며 당신의 존재를 늘 내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아 하느님 말씀을 모른 척하며 살지 않는 이상, 하느님은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친절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많은 말씀 가운데, 유독 여러번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고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만큼, 내가 이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그날은 과연 언제 올 수 있을지…. 오늘도 난 하느님 앞에서 한없이 모자라고 부끄러운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날 사랑하실 거야 … 영원히….’ 라고.

김태희 베르다┃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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