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말씀의 이삭 - 김태희 03
성경공부를 하면서
나는 성경을 처음부터 제대로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해박 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인간에 의해 기록된 옛 문헌 을 증거로 그것이 모두 사실이며 진리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 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나는, 아무런 참고서 나 선생님 없이 바로 학문을 터득하려는 무 모한 학생처럼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그분의 뜻을 간파하고 싶고 그분 을 좀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구 체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주일에 단 한 번, 고작 한 시간일 뿐인 미사 시간에도 수십 번씩 딴생각을 하고, 자기 전에 달랑 한두 구절의 말씀만을 묵상 하며, 내가 바라는 것만 이루어지게 해달라 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하느님 뜻대 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말이 얼 마만큼 내 진심과 맞닿아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두달 전부터 우연찮게도 성경공부 모임 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본당의 한 신 자로서 청년활동에 대한 이런저런 권유를 많이 받아왔지만, 내가 다른 청년들과 어울 리며 신앙생활을 서로 나누고 돕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기적으로 신부님과 내 또래 자매들과 함께 너무나 즐거운 성서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혼자서 성경을 읽었다면, 아무리 고민해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 고, 참뜻을 알지 못하니 그 어떤 감흥도 느 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혼자서 꾸준 히 성경을 읽어나간다는 것 자체가 실현되 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성경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 의 하느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하느님 이란 과연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면서 성서모임은 점점 더 신이 나고 흥미로운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까지 나의 신앙생활 은, 만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내 가 그린 상대방의 이미지,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상대방의 모습만을 보며 그의 진짜 모습은 모른 체 그를 사랑한다고 착각한 가 짜 연애처럼 해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 만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고, 특히 나는 지 난 일을 너무나 쉽게 잘 잊어버리는 편입니 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내게 아무리 좋은 말 씀을 해주시고, 놀라운 체험으로 나를 깨닫 게 해주셔도 또 금세 잊어버리고 제자리걸 음만을 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 나에 게 이번 성서모임은 하느님께서 또 한 번 나 를 불러주시고 은총의 기회를 손수 마련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 기회를 요한복음을 마 무리하는 날까지 소중히 여기고, 모임을 처 음 시작할 때 가졌던 지향을 꼭 이룰 수 있 기를 바랍니다.
이에 지난 시간에 읽은 말씀 가운데, 내 마음에 특별히 와 닿은 구절을 나누고 싶습 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 다.”(요한 3,8) 나는 이 말씀이 영으로 충만 한 사람은 바람과 같이 자유롭다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그 말씀대로 어떠한 제약 없 이 눈앞의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살 고 싶습니다. 나를 이끄시는 대로 하느님 뜻 에 순종하며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알 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 행복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 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김태희 베르다┃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