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 - 김태희 02

종교 이야기 2012. 6. 29. 21:28

[말씀의 이삭]

 

 

하느님의 훈육 방법

  삶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절실히 찾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쁜 일이 생겨 한없이 감사를 드릴 때, 그리고 힘든 일이 생겨 마음이 너무나 괴로울 때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느님 앞에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게 될 때는, 역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뭔가 큰일이 생겼을 때인 것 같습니다. 사실 살다 보면,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하며,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지금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 하고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해를 입힌 것 같은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서 과연 아무 이유 없이 오로지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이신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 마냥 피하고만 싶은 일들도 분명 시간이 흐르면, 그로 인해 내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게끔 하신 하느님의 지혜로운 훈육 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예상치 못했던 사건 하나하나가, 사실은 모두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 누구에게도 원망이나 불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숨은 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면서 그분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우리가 늘 하느님을 잊지 않고 사는 것, 그것 하나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상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을 위해 하느님께 뻔뻔하게 매달리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잘것없고 어리석은 목소리에도, 하느님은 언제나 늘 계시던 그 자리에서 귀 기울여 들어주십니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도, 혹은 내게 왜 이런 시련과 고난을 주시나 하고 영문을 모를 때도, 하느님께 답을 묻고 의지하면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은 더 이상 나 혼자 지고 가야 하는 짐이 아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연기’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은 정말 하느님이 주관하시지 않았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을 일입니다. 내가 많은 사람 앞에 나서서 뭔가를 표현하는, 연기를 하게 될 줄은 정말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말이 없고 사교성이 그닥 좋지 않았던 나는, 몇몇 친한 사람들 하고만 잘 지내며 내 할 일만 성실히 하면서 살 뿐이었습니다. 그런 내게, 하느님은 연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살아보게 하고, 그들을 마음으로 온전히 이해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연기를 통해, 나를 설레게 하고 희열을 느끼게도 하며 풍성한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또, 무엇보다도 정말 많은 팬들의 조건 없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을 내 앞에 보여주시면서 개인주의적인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되돌아보게 하십니다. 결국, 하느님이 나를 연기자로 이끄신 것은 아마도 그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김태희 베르다┃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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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이삭- 김태희 01

종교 이야기 2012. 6. 27. 09:28
Seouljubo

[말씀의 이삭]

 

 

나는 늘 너와 함께 있다.

  처음 성당에 다니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입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 남동생과 함께 교리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아, 그렇게 첫영성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더 어릴 때에는 조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에 가끔 절에 따라다니기도 했는데, 어린 내 눈에는 왠지 모르게 성당 다니는 다른 친구들이 예쁜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 부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성당의 사목회장을 맡고 계시던 담임 선생님께서 어느샌가 엄마를 인도하셨고, 그렇게 해서 나머지 가족들도 차례로 자연스럽게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해서 곧바로 하느님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성당에 열심히 다녀야 왠지 복을 받을 것 같고, 수험생이 되어 불안할 때 어딘가 기댈 곳이 있다는 게 좋았을 따름이었습니다. 내가 자란 울산은 당시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였기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고등학교 입시에 대한 경쟁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단순한 성격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매주 주일 미사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게 정확히 중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걸어서 학교 가는 길이었는데 유난히 아침 햇살이 따듯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땅도 보고 하늘도 보며 걷다 불현듯 뭔가 알 수 없는 신비스런 기운에 휩싸이면서 가슴이 벅차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늘 너와 함께 있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하지만 눈이 부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저 태양처럼, 그렇게 하느님이 나도 모르게 늘 나를 지켜봐 주시고 따듯하게 안아주시고 계셨구나 하는 황홀한 깨달음이 한순간에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뒤로 나는 대부분의 날을 행복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껏 만끽하며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그냥 그날의 기분 탓에 겪은 단순한 감정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다는 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증명해 보여줄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난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놀라운 체험들을 꽤 많이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사사롭고 막무가내인 수많은 기도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응답해주시며 당신의 존재를 늘 내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아 하느님 말씀을 모른 척하며 살지 않는 이상, 하느님은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친절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많은 말씀 가운데, 유독 여러번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고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만큼, 내가 이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그날은 과연 언제 올 수 있을지…. 오늘도 난 하느님 앞에서 한없이 모자라고 부끄러운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날 사랑하실 거야 … 영원히….’ 라고.

김태희 베르다┃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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