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종교 이야기 2012. 8. 26. 19:00
제자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영으로 다시 나지 않고 육에 따라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육에 따라 지배받으면 영에 자신을 맡기지 못합니다. 육은 시간이 지나면 죽음으로 사라집니다. 육은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 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믿는 이들과 믿지 않는 이들로 나뉘었 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도 끊임없이 신앙의 결단을 요구합니 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삶은 영과 육의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육은 이기심과 악으로 나아가는 성향을 갖고 있는데, 이 육에 따라 살아가면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 니다.”(갈라 5,17 참조)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는 끊임없이 싸움이 벌어집니다. 사람에게는 육의 충동과 영의 충동이 있 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고 쾌락적인 생활 속에서는 영에 따른 생활을 할 수 없습니 다. 육을 이겨 내려면 성령의 인도에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 유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만 성령을 맞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따 라 살게 되면 평화와 기쁨이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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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승천 대축일 2012/8/15

종교 이야기 2012. 8. 15. 11:02
오늘은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 나라로 불 려 올라가셨다는 신앙 교의를 기리는 의무 축일이다. 성모 승천은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른 것이다. 1950년 비오 12세 교황 은 성모 승천의 신비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다.

<전능하신>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56 39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 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 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 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 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 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인류는 놀라운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발달된 과학 기술을 사람을 죽이고 문명을 파괴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그 가운데 두 번의 세계 대전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이 같은 참상은 인간이 하느님을 잊고 자신의 힘과 재주만을 과신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인류의 미래는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인 간의 판단과 능력에는 늘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아셨습니다. 성모님의 온전한 의탁은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 시 이루어지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다는 것을 믿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엘리사벳은 주님께 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성모님이야말로 참으로 행복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많이 배워서, 가진 것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 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저울로 인간의 행위를 측량하시는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곧, 인간의 저울로 재면 권 세 있고 부유한 이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저울로 재면 굶주리고 비천하게 살지만 가난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정의로움입니다. 인 류의 평화와 구원은 하느님의 정의로움을 믿고 살아갈 때 찾아옵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이 점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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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Randi의 TED영상...

종교 이야기 2012. 8. 11. 19:19

종교, 점술, 초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있는 James Randi의 TED 강연 영상입니다.
영상하단에 한글 자막이 나올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의 업적은 대단합니다. 미국의 유명목사 Peter Popoff(순복음 교회) 의 사기를 찾아내고 밝혀내었으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무리에 속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도 와서 수많은 무당과 점쟁이들을 바보로 만든 장본인 이기도 합니다.


종교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만, 맹목적인 믿음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게 합니다.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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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2012.7.29 나해) - 오병이어의 기적

종교 이야기 2012. 7. 28. 18:19
오늘의 복음 - 오병이어의 기적

<예수님께서는>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 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 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 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 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에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 어 주십니다. 예수님께는 청하는 것과 감사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 버지, 제 손에 든 빵을 많이 불려 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빵이 불 어나기도 전에 먼저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십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아버 지께서 당신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확신하셨다는 뜻입니다.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경주의 최 부잣집 사연이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최 부잣집 가문의 마지막 부자는 가진 재산을 모두 사회에 내놓았습니다. 그는 어느 노스님에게 서 들은 다음 금언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물은 똥오줌과 같아서 한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서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 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재물은 쌓아 두면 독이 되지만 나누면 덕이 됩니 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저의 하느님, 당신께 모든 것을 돌려 드립니다.” 하고 기 도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느님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단지 돌려 드릴 것이 있 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 문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입니다. 우리 가 가진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히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 나누며 사는 것이 기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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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수능 바깔로레아

종교 이야기 2012. 7. 23. 15:57

프랑스 수능 바깔로레아 를 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는데, 우리 청소년들은 과연 대답을 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내에선 다음과 같은 것은 교육에 반영도 도움도 안되는 것들로 밖에 안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은 물어보는 실용적인 문제다운 문제 같아 오늘 포스트 해 봅니다.

1장 인간(Human)

질문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질문2-꿈은 필요한가?
질문3-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질문4-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질문5-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질문6-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질문7-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질문8-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질문10-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질문11-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질문1-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질문2-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3-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질문4-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질문5-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질문6-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질문7-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질문8-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질문9-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질문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질문1-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질문2-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질문3-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질문4-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질문5-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질문1-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질문2-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질문3-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질문4-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질문5-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질문6-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질문7-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8-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질문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10-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질문11-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질문1-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질문2-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질문3-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질문4-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질문5-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질문6-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질문7-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질문8-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질문9-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질문10-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질문11-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질문12-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질문13-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질문14-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질문15-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질문16-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질문1-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
질문2-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질문3-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질문4-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질문5-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질문6-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질문7-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질문8-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질문10-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질문11-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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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이삭 - 김태희 04

종교 이야기 2012. 7. 15. 23:59

말씀의 이삭 - 김태희 04

[말씀의 이삭]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나는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 스럽고, 때로는 남들보다 특별한 혜택을 받 았다는 우월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과시하고 자랑하게 될까봐 두 렵기도 하고, 나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하 느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봐 조심스럽습 니다. 그런 이유로 주위 사람들에게 하느님 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나는 혼자서만 조 용히 하느님 사랑을 맛보고 즐거워했습니 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잊고 살았다는 것과 내 가 그 동안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죄책감입 니다. 변명을 굳이 하자면, 내 성격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 마음이 내키는 쪽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남에 게도 쉽사리 무엇인가를 권유하는 일이 별 로 없습니다. 특히, 종교나 믿음같은 문제 는 누가 말로써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수아 바리 용 신부님이 쓰신 「흔들리지 않는 신앙」 을 읽으면서 선교 활동에 대해 내가 가졌던 회의적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 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선교 활동을 할 때, ‘구 원’이라는 단어를 꼭 씁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 느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 기서 간단한 질문 몇 가지에 대한 그리스도 교적 답변을 알아봅니다. 1. 누가 구원되는가? - 인간이 / 2. 누가 구원하는가? - 예수 그리스도께서 / 3. 무 엇으로부터 구원되는가? - 죄에의해 배 가(倍加)된 인간의 유한함으로부터 / 4. 무 엇에 도달하기 위해 구원되는가? - 더욱 정 의롭고 보다 형제애적이며 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아 느냐, 알지못하느냐와 교회에 매주 다니느 냐, 다니지 않느냐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 는 것일까요? 솔직히 나는 자신이 태어난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리스도교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하고 죽는 이들도 수없이 많은 데, 그건 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한 것이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에 의하면 교회에 다니면서도 교회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교회에 대 해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교회에 속해 있 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모 르는 사람들이지만, 하느님의 목소리인 ‘양심’에 따라 도덕적, 인격적으로 사는 그 들의 행위 안에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현 존하고 계신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우리가 그 리스도를 알리러 가는 길이 의미 없는 일이 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 말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게 해주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정말 사랑 한다면 좋은 것을 서로 나누고 싶어지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 하 시며, 그때 취하시는 길이 바로 ‘교회’입니 다. 최후만찬 후, 예수님께서는 결코 “하느 님에게 올라가자”고 말씀하시지 않고, “우 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 다.”(요한 14,23)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활동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끌어안아, 우리로 하여금 당 신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달려오 시는 그 서두름인 것입니다. 예전부터 나는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이냐 는 인터뷰 질문에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자!” 라고 답해왔고, 그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나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 내는 일에 도구로 쓰여, 감히 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 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받은 사랑을 되돌 려줄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 덕분에 내가 느끼는 이 기쁨을 모두가 느낄 수 있게 되 는, 나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아닐까 싶 습니다. 김태희 베르다┃배우


나의 iPad에서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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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농민주일

종교 이야기 2012. 7. 15. 13:48

농민 주일을 맞아, 고려 말의 시인 이규보가 쓴 “농부를 대신하여”(代農夫)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비 맞으며 논바닥에 엎드려 김매니/ 흙투성이 험한 꼴이 어찌 사람 모습이 랴만/ 왕손 공자들아 나를 멸시 마라/ 그대들의 부귀영화 농부들에게서 나오나니 …….” 오늘은 특별히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날입니다. 위에 소개한 시처럼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것들은 대부분 농부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은 땡볕 아래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들게 일합니다.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워 열매를 맺고 여물려면 대지와 태양, 바람과 비, 그리고 농부의 정성스 러운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쌀 한 톨 한 톨에도 하느님의 조화로운 손길과 농부의 땀방울이 담겨 있습니다. 농촌에서 살다 보니 농민들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해 도 돌아오는 것은 고단함과 가난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 그 안에 담긴 농부 들의 수고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낭송은 “감사합니다.”라 는 이 한마디라고 합니다. 이 땅의 농민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를 읊어 드리고 싶습니 다. “농부님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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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이삭 - 김태희 03

종교 이야기 2012. 7. 13. 12:08
말씀의 이삭 - 김태희 03

성경공부를 하면서

나는 성경을 처음부터 제대로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해박 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인간에 의해 기록된 옛 문헌 을 증거로 그것이 모두 사실이며 진리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 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나는, 아무런 참고서 나 선생님 없이 바로 학문을 터득하려는 무 모한 학생처럼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그분의 뜻을 간파하고 싶고 그분 을 좀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구 체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주일에 단 한 번, 고작 한 시간일 뿐인 미사 시간에도 수십 번씩 딴생각을 하고, 자기 전에 달랑 한두 구절의 말씀만을 묵상 하며, 내가 바라는 것만 이루어지게 해달라 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하느님 뜻대 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말이 얼 마만큼 내 진심과 맞닿아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두달 전부터 우연찮게도 성경공부 모임 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본당의 한 신 자로서 청년활동에 대한 이런저런 권유를 많이 받아왔지만, 내가 다른 청년들과 어울 리며 신앙생활을 서로 나누고 돕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기적으로 신부님과 내 또래 자매들과 함께 너무나 즐거운 성서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혼자서 성경을 읽었다면, 아무리 고민해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 고, 참뜻을 알지 못하니 그 어떤 감흥도 느 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혼자서 꾸준 히 성경을 읽어나간다는 것 자체가 실현되 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성경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 의 하느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하느님 이란 과연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면서 성서모임은 점점 더 신이 나고 흥미로운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까지 나의 신앙생활 은, 만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내 가 그린 상대방의 이미지,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상대방의 모습만을 보며 그의 진짜 모습은 모른 체 그를 사랑한다고 착각한 가 짜 연애처럼 해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 만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고, 특히 나는 지 난 일을 너무나 쉽게 잘 잊어버리는 편입니 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내게 아무리 좋은 말 씀을 해주시고, 놀라운 체험으로 나를 깨닫 게 해주셔도 또 금세 잊어버리고 제자리걸 음만을 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 나에 게 이번 성서모임은 하느님께서 또 한 번 나 를 불러주시고 은총의 기회를 손수 마련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 기회를 요한복음을 마 무리하는 날까지 소중히 여기고, 모임을 처 음 시작할 때 가졌던 지향을 꼭 이룰 수 있 기를 바랍니다.

이에 지난 시간에 읽은 말씀 가운데, 내 마음에 특별히 와 닿은 구절을 나누고 싶습 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 다.”(요한 3,8) 나는 이 말씀이 영으로 충만 한 사람은 바람과 같이 자유롭다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그 말씀대로 어떠한 제약 없 이 눈앞의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살 고 싶습니다. 나를 이끄시는 대로 하느님 뜻 에 순종하며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알 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 행복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 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김태희 베르다┃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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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와 복음

종교 이야기 2012. 7. 8. 09:21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목요일) 이동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말하는 흔히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시는 분들의 근거..? 그렇지만 악법도 아닌 법을 어겨가며, 종교의 자유를 무시한채 강압적인 방식으로 엉터리 교회를 전파하여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주님의 뜻을 위배하는 것이 아닐지...

<너희는>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18-22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18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 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 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 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 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 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 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 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 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 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 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 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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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종교 이야기 2012. 7. 1. 18:14
텔레비전에서 ‘가시고기’라는 작은 물고기의 일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시고기의 어미는 알을 낳기 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알을 낳고는 가시고기의 아비만 남겨 두고 떠 납니다. 남은 아비 가시고기는 정성스럽게 알 을 보살핍니다. 알이 부화하면 아비는 지쳐서 죽고, 새끼들은 죽은 아비의 몸을 먹고 살아 납니다. 이처럼 아비 가시고기의 마음에는 바 다를 품은 큰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병든 딸을 둔 아버지가 나옵니 다. 그는 아비 가시고기처럼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그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께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 서 그는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 발 앞 에 엎드려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십사고 간곡히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을 생각하는 아버 지의 믿음을 보시고 그와 함께 가시어 그의 딸 을 살려 주십니다. 요즈음 시대에 아버지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고들 합니다. 마음에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 있지만 아버지는 바쁘고 지쳐 있습니다. 그래 서 자녀들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할 시간이 없 습니다. 함께할 기회가 적으니 자녀들의 고민 이나 관심이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 이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자 녀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잠시 시간을 내어 자녀를 위하여 기도 하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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