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8.1 오류코드12에 관하여....

컴퓨터/PC 2013. 11. 12. 18:14

윈도우 8.1 오류코드12, Error 12 in Windows 8.1

 

정품 윈도우 8.1 엔터프라이즈를 사용하여 정품 윈도우8 프로를 업데이트 하였다.

 

그러나...

 

리소스가 부족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아버지의 컴퓨터(Fujitsu S6311)에 있는 무선랜이 작동하지 않았다. 즉, 두개의 기기가 충돌한다는 것이다.

 

Intel 3945 ABG 모델인데, 간혹 구글에 보이고 있는 상황이나 해결된 것을 보진 못했다.

 

윈도우8 까진 잘 되었었는데, 일단 8.1로의 업데이트 과정에서 뭔가 실수해서 앱과 드라이버를 다 지우고 다시 업한것 제외하곤 잘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Intel에서는 정식으로 드라이버도 지원한다.

 

Villiv S5가 윈도우8 이후 무선랜 드라이버 지원을 못해서 편법으로 설치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잘되어야 정상일텐데...

 

여러가지 웹을 찾다가. 결국 수동으로 각각의 드라어버를 '사용안함'으로 하였다.

결국 찾았다. PCMCIA (O2 micro OZ711MP1/MS1 Memory Cardbus Controller)를 사용안함으로 하자마나 무선랜이 작동한다. 요즘 PCMCIA를 안쓰니까 꺼버리고 쓰면 될듯 하다.

 

 

 

윈도우8과 윈도우8.1이 구형 컴퓨터에서 잘 작동한다는 광고를 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소소한 문제에 나의 경우 2번이나 직면하였다. 심지어 오래된 도선컴(Dothan CPU PC)의 경우는 그냥 윈도우 XP를 사용중이다.(설치불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음 포스트 예고: 우리집 컴퓨터 윈도우 8.1 업데이트 이후 유선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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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자가 점을 보러가도 되나요?

종교 이야기 2013. 11. 3. 18:19
[가톨릭교회교리서 해설-1]

 

 

“천주교 신자가 점(占)보러 가도 되나요?”

  올해도 변함없이 대입 수능시험이 다가옵니다. 시험 앞에 학생들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초췌해지고, 수험생을 둔 부모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덩달아 긴장합니다. 자식이 잘된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부모의 마음은 간절합니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가 자녀의 입학이나 성공을 위해 점을 보러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성경은 시련과 도전 앞에서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 길은 우리보다 앞서 걸어간 신앙인의 발자취를 따르며 그들의 믿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하란에 정착하여 살던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립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그는 안정된 삶의 터전인 고향과 아버지를 떠나라는 말에 근심이 밀려오고,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라는 말에 불안감은 커져만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성모님은 더욱 놀라운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말,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리라는 말을 듣고 과연 누가 이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당시에는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성모님도 처음에는 몹시 놀랐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대답하며 믿음의 극치를 보여주십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우리 앞에 언제나 어둠처럼 드리워지지만 그것이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미래와 관련된 모든 것을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의 섭리의 손길에 맡겨드리고 이에 대한 불건전한 호기심을 완전히 버리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115항)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은 생명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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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7일 생명의 말씀

종교 이야기 2013. 10. 26. 18:24
[생명의 말씀]

 

 

하늘나라는 겸손한 사람들이 들어간다

  어느 겨울날 한 추기경님이 로마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서 허리가 구부정하고 남루한 옷을 걸친 한 노인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추기경님은 노인의 모습이 측은하여 말을 건넸습니다. “어르신, 이 추운 겨울에 어디를 가십니까?” 그러자 그 노인은 “예, 추기경님! 저는 건축학교에 가는 길입니다. 배울 것이 아직도 많은데 저에게 시간이 없네요.”라고 대답을 한 노인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던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자신만이 최고이며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자신의 발전을 막고 인간관계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도 파멸로 이끕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죄의 원인 중 하나로 ‘교만’을 꼽습니다. 겸손은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이거나 구원받지 못할 죄인이라고 단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겸손은 진리입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우리 인간은 하느님이 아니며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 이 미약함이 우리의 현실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누립니다. 고통과 힘든 현실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하며 남의 이목이나 가치판단 따위에 자신을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유일한 안내자는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겸손은 인내심을 길러주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고 여유를 갖게 합니다. 따라서 겸손한 사람은 기도를 더욱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비유에는 의인으로 자처하는 바리사이와 공적 죄인으로 멸시당하는 세리가 등장합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삶에서 두 사람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바리사이는 자신들이 완벽하게 산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리는 입에 하느님의 기도를 담기도 죄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겸손하게 기도하는 세리가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단언하십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바리사이의 교만을 지적합니다. 그는 남들의 결점이나 잘못을 들추어내고 비방합니다. 자신은 다른 이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자부합니다. 그의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이 아니라, 교만스런 자기 자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나 말고도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을 보십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하느님 앞에 죄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의 행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전적으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시고 죄인들에게도 자비심을 갖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죄인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살아서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교구장 비서실 수석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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